
※ 이 글에는 영화 〈더 고지〉의 주요 장면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로를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협곡의 서쪽 초소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동쪽 초소에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협곡이 놓여 있고, 내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두 사람은 이 거대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손짓으로 대화하고, 생일을 축하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건네고, 결국 밧줄을 이용해 서로의 초소를 오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협곡 아래로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갈라놓았던 공간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공간이 됩니다.
애플 TV+ 오리지널 영화 〈더 고지(The Gorge)〉가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괴물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실제 중심에는 '고립된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는가'라는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감독 스콧 데릭슨은 영화의 장르를 SF, 액션, 로맨스, 호러가 섞인 작품으로 접근했고, 각 장르가 바뀌는 동안에도 두 주인공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기본정보
| 제목 | 더 고지(The Gorge) |
| 감독 | 스콧 데릭슨 |
| 각본 | 잭 딘 |
| 출연 | 마일스 텔러, 안야 테일러 조이, 시고니 위버 |
| 장르 | SF, 액션, 로맨스, 호러 |
| 공개 | 2025년 2월 14일 |
| 러닝타임 | 127분 |
| 플랫폼 | Apple TV+ |
애플은 〈더 고지〉를 비밀스러운 협곡의 서로 반대편 초소에 배치된 두 요원이 서로 가까워지고, 결국 협곡 아래의 위협과 맞서게 되는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괴물'보다 '거리'에 있다
〈더 고지〉에서 가장 재미있는 설정은 두 주인공이 처음부터 서로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날 수 없습니다.
리바이와 드라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명령상 서로 연락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초반부의 로맨스는 일반적인 영화와 다릅니다.
전화도 어렵고, 직접 만날 수도 없습니다.
대신 멀리서 손짓하고, 글자를 보여주고, 망원경으로 상대를 바라봅니다.
이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가 '사랑'을 접촉보다 관찰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만날 수 없으니 오히려 상대방의 행동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바이와 드라는 서로의 외로움을 발견합니다.
각자의 초소에서 홀로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두 사람에게 상대방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자신이 이곳에 혼자 갇혀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됩니다.
각본가 잭 딘은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고립 경험에서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설정을 협곡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표현했고, 영화의 핵심을 사랑과 미지의 공포 사이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협곡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두 사람을 갈라놓는 벽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리바이와 드라는 왜 서로에게 끌렸을까?
두 사람은 처음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리바이는 미국 출신의 전직 해병대 저격수이고, 드라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비밀 작전에 참여해 온 요원입니다.
둘 다 전투 경험이 많고, 혼자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거창한 대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행동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드라사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리바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는 리바이.
드라사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을 주는 리바이.
그리고 리바이가 협곡으로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뒤따라가는 드라사.
이런 장면들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라기보다 고립 속에서 생긴 신뢰에 가깝습니다.
스콧 데릭슨 감독 역시 두 사람이 서로를 지켜보는 행동 자체를 로맨스의 핵심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액션 장면에서도 서로를 보호하고 바라보는데, 감독은 이것을 상당히 낭만적인 요소로 봤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협곡을 건너는 순간'이다
리바이가 드라사를 만나기 위해 협곡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에 거대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물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리바이는 결국 직접 건너갑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데이트 장면이 아닙니다.
리바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던 규칙을 깨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둘은 서로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임무 규정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을 단순한 군사 규율 위반으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을 고립시키던 삶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연결되기로 선택하는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후 와이어가 끊어지는 장면은 더 의미가 있습니다.
리바이는 실제로 협곡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라사가 그를 구하기 위해 협곡으로 뛰어듭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협곡 아래에서 시험받는다
영화의 중반부부터 장르가 크게 바뀝니다.
초반은 고립된 두 저격수의 로맨스처럼 진행됩니다.
그러나 리바이가 협곡 아래로 떨어지고 드라사가 그를 따라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SF 호러 액션으로 전환됩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할로우맨(The Hollow Men)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닙니다.
과거 이곳에 투입됐던 병사들과 연결된 존재입니다.
그리고 협곡 아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생물학 무기 연구와 관련된 시설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뒤집습니다.
리바이와 드라는 지금까지 협곡을 감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협곡 안의 존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두 사람은 감옥의 감시자였던 셈입니다.
할로우맨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다
이 부분에서 〈더 고지〉는 단순한 괴물 영화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협곡 안의 괴물들은 무섭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괴물이 만들어진 과정입니다.
영화에서는 과거의 생물학 무기 연구가 변이의 원인이 되었고, 이후 민간 방산기업 다크레이크가 이곳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변이 생명체의 샘플을 활용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즉, 괴물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위험한 기술을 만들고, 그 위험을 통제하려다 결국 또 다른 목적에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여기서 영화의 시선이 공포에서 기업과 군사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이동합니다.
스콧 데릭슨은 실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하나의 장르로만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라 후반부로 갈수록 SF와 액션, 서스펜스, 정치 스릴러까지 확장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더 고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은 바로 장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SF가 있습니다.
호러가 있습니다.
액션이 있습니다.
로맨스도 있습니다.
군사 스릴러와 기업 음모까지 등장합니다.
이 조합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실제로 로저이버트의 브라이언 탈레리코는 영화가 로맨스와 액션, 호러, SF를 섞으면서 장르적 재미를 만들어낸다고 평가하면서도 초반 설정이 길고 결말이 급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은 〈더 고지〉의 가장 뚜렷한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반의 '두 사람이 협곡을 사이에 두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매우 독특합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괴물의 정체.
과거의 연구.
기업의 목적.
감염.
자폭 프로토콜.
배신.
탈출.
이야기의 규모는 커지지만, 반대로 초반에 쌓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후반부는 재미있지만 초반만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결말에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았다'가 아니다
※ 이하 결말 스포일러입니다.
리바이와 드라는 협곡을 빠져나온 뒤 서로가 감염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정 기간 떨어져 있기로 합니다.
이 설정은 영화에서 꽤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가까워질 수 없어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떨어져 있습니다.
같은 '거리'인데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의 거리는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거리는 서로의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드라사는 리바이가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리바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둘은 다시 만납니다.
이 결말은 상당히 전형적인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협곡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보면 조금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가 마지막에 없애는 것은 괴물만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거리'입니다.
처음에는 협곡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중간에는 협곡이 두 사람을 시험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그 협곡을 함께 통과하면서 관계를 완성합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 **〈The Gorge〉**는 단순히 괴물이 사는 장소를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극복해야 했던 심리적 거리까지 포함하는 제목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설정은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다
〈더 고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초반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리바이와 드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연락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명령 때문에 직접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손짓과 표정, 글씨, 행동으로 서로를 알아갑니다.
이 때문에 영화 초반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 조금 다른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스콧 데릭슨 감독은 이 부분을 거의 무성영화처럼 접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관객이 관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행동과 시선으로 관계를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부분입니다.
괴물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관객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바이가 떨어졌을 때 드라사가 협곡으로 뛰어드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더 고지〉의 장점
① 장르 조합이 독특하다
SF와 호러, 액션, 로맨스를 한 영화 안에 섞었습니다.
특히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저격수의 로맨스'와 '협곡 아래의 괴물'을 연결한 기본 설정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② 두 배우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마일스 텔러와 안야 테일러 조이는 서로 떨어진 공간에서도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감독 역시 두 배우의 호흡과 서로를 보호하는 행동을 영화의 중요한 로맨스 요소로 설명했습니다.
③ 액션 장면의 공간 활용
거대한 협곡과 두 개의 초소를 활용한 액션은 일반적인 실내 액션과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와이어를 이용해 협곡을 건너는 장면과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은 높이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됩니다.
〈더 고지〉의 아쉬운 점
① 후반부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간다
초반에는 두 사람의 관계와 협곡이라는 미스터리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생물학 무기, 기업, 군사 작전, 감염, 탈출까지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후반부에서 분산됩니다.
② 협곡의 비밀이 공개된 뒤 긴장감이 떨어진다
초반에는 관객도 협곡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 미지의 공간 자체가 공포입니다.
하지만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는 이야기가 비교적 익숙한 비밀 연구시설과 기업 음모의 형태로 이동합니다.
③ 좋은 설정에 비해 결말이 조금 급하다
로저이퍼트 역시 영화가 중반부의 장르적 재미를 보여주지만 마지막 부분은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다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더 고지〉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영화지만, 모든 아이디어를 같은 깊이로 발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더 고지〉를 괴물 영화라고만 생각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반대로 로맨스 영화라고 하기에도 액션과 호러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로맨스를 중심에 놓은 장르 혼합형 SF 액션 영화'에 가깝습니다.
각본가 잭 딘이 직접 밝힌 영화의 출발점도 결국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팬데믹 시기의 고립과 단절에서 출발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는 두 사람을 거대한 협곡으로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커도, 서로를 향해 움직이기로 한다면 그 거리를 넘어설 수 있을까?
영화는 여기에 꽤 단순한 답을 내립니다.
넘을 수 있다고.
리바이는 협곡을 건넜고,
드라는 그를 구하기 위해 협곡 아래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협곡에서 살아 돌아온 뒤 다시 서로에게 돌아갑니다.
이런 분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 SF와 액션, 호러가 섞인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분
- 괴물의 정체보다 미스터리가 풀려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분
-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
- 〈콰이어트 플레이스〉, 〈오블리비언〉,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장르가 섞인 영화를 좋아하는 분
- 무겁고 복잡한 영화보다 볼거리와 장르적 재미를 우선하는 분
- 로맨스가 들어간 SF 액션 영화를 찾는 분
반대로 현실적인 로맨스나 정교한 SF 세계관을 기대한다면 설정의 개연성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최종 정리
- 〈더 고지〉는 괴물보다 두 사람의 '거리'에 관한 영화다.
- 리바이와 드라는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관계를 시작한다.
- 협곡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장치다.
- 할로우맨의 정체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 무기 연구와 민간 방산기업의 욕망이 드러난다.
- 후반부는 SF·호러·액션으로 확장되면서 볼거리가 많아지지만, 그만큼 초반의 독특한 로맨스가 약해진다.
- 결말은 두 사람이 협곡을 통과하면서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모두 극복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 줄 평
거대한 협곡을 사이에 두고 시작된 두 저격수의 사랑은 결국 그 협곡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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