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말과 주요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평범한 중년 남자에게 신의 힘이 생겼다
58세의 평범한 직장인 이누야시키 이치로.
회사에서는 존재감이 없고,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아내와 자녀들은 그를 불편해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무시당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말기암입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치로의 삶은 이미 끝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공원에서 의문의 빛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치로는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온몸이 기계로 변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몸에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날아다닐 수 있고,
엄청난 파괴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몸을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남자에게 갑자기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고를 당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시가미 히로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 이누야시키 |
| 원제 | いぬやしき |
| 개봉 | 2018년 4월 20일 |
| 장르 | SF·액션·스릴러 |
| 감독 | 사토 신스케 |
| 원작 | 히로야 오쿠 |
| 출연 | 노리타케 킨시, 사토 타케루, 혼고 카나타, 후미 니카이도 등 |
| 러닝타임 | 127분 |
| 제작 | 일본 |
일본영화 데이터베이스 JFDB와 제작사 자료에 따르면 〈이누야시키〉는 히로야 오쿠의 만화를 실사화한 작품으로, 2018년 4월 개봉했으며 러닝타임은 127분입니다.
이치로와 히로는 같은 힘을 얻었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두 사람이 똑같은 능력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둘 다 인간의 몸을 초월한 기계 신체를 갖게 됩니다.
둘 다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둘 다 엄청난 파괴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치로는 사람을 살립니다.
히로는 사람을 죽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영화의 핵심 질문이 시작됩니다.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힘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후지 TV 역시 작품을 소개하면서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겪고 초인적인 힘을 얻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점을 핵심 설정으로 설명합니다.
이치로에게 초능력은 ‘선물’이 아니었다
이치로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병을 가족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도 없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치로가 기계 인간이 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동물을 치료하고,
병원에 찾아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환자를 살립니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자리를 떠납니다.
여기서 이치로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삶의 의미를 발견한 남자
이치로에게 암 선고는 인생의 끝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죽음을 앞둔 순간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살리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이전까지 가족에게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치로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치로는 초능력을 얻어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힘을 누군가를 위해 사용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히로는 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을까?
히로 역시 처음부터 모든 인간을 죽이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있고, 친구 안도가 있습니다.
특히 안도는 히로가 가진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히로는 새로운 힘을 얻은 뒤 점점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나는 인간이 아니다.”
이 생각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 사회의 규칙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고,
원하면 누구든 제거할 수 있으며,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복수할 수 있습니다.
결국 힘은 히로의 억눌린 분노와 결합합니다.
그리고 작은 폭력이 점점 커집니다.
한 사람에서 여러 사람으로,
개인적인 복수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마침내는 일본 전체를 대상으로 한 테러로 확장됩니다.
일본타임스도 히로가 자신을 더 이상 인간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인간의 법과 도덕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을 이 작품의 핵심적인 변화로 설명합니다.
같은 힘인데 결과는 왜 이렇게 달랐을까?
여기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이치로와 히로는 같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같은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인간 사회에서 외로움과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행동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힘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누야시키가 ‘아저씨 영웅’이라서 재미있는 이유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 젊습니다.
잘생겼고,
강하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58세의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노리타케 킨시는 이치로의 초라하고 위축된 모습을 먼저 보여준 뒤, 같은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대비시킵니다.
그래서 액션 장면에서도 묘한 재미가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싸우는 법도 제대로 모릅니다.
영웅처럼 폼을 잡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결국 몸을 던집니다.
일본타임스 역시 이 작품의 독특한 점으로 은퇴를 앞둔 중년 샐러리맨이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설정을 꼽았습니다.
하나코는 이치로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존재다
영화 초반의 반려견 하나코도 그냥 귀여운 동물이 아닙니다.
이치로에게 하나코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치로에게 하나코는 아무런 조건 없이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치로가 초능력을 얻은 뒤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하나코와의 관계와도 연결됩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 것.
그것이 이치로가 영웅이 되는 출발점입니다.
반대로 히로에게는 ‘힘을 보여줄 관객’이 필요했다
히로는 능력을 얻은 뒤 자신의 힘을 숨기기보다 즐깁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능력을 보여주고,
이후에는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악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확인하려는 욕망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 욕망은 더욱 커집니다.
사람들의 공포와 관심이 히로에게 일종의 존재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히로의 행동은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합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실 안도일지도 모른다
히로와 이치로의 대립에서 빠지기 쉬운 인물이 안도입니다.
하지만 안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인간적인 기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히로와 친구이지만 그의 행동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치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히로를 막는 데 협력합니다.
이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히로에게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있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상처를 주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는 히로의 과거를 보여주지만, 그것을 살인의 면죄부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 결말 스포일러
후반부 히로는 결국 일본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폭주합니다.
도시가 공격받고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집니다.
이치로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히로와 맞서게 됩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단순한 히어로 대 빌런의 대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같은 힘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해온 두 사람의 마지막 충돌입니다.
전투 과정에서 이치로는 히로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하고, 결국 히로를 제압합니다.
하지만 이치로 역시 큰 대가를 치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가족과 다시 마주합니다.
특히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딸 마리와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이 장면은 액션보다 오히려 이 영화의 정서적인 결말에 가깝습니다.
이치로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어서 가족에게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서로 외면했던 가족이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비
〈이누야시키〉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두 사람에게 같은 신의 능력이 주어졌지만, 한 사람은 생명을 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빼앗는다.”
이 설정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SF 액션을 넘어갑니다.
| 이치로 | 히로 |
| 가족에게 소외됨 | 가족 문제를 안고 있음 |
| 죽음을 앞둠 | 젊고 미래가 많음 |
| 힘을 얻고 사람을 살림 | 힘을 얻고 사람을 죽임 |
| 자신의 힘을 숨기려 함 | 자신의 힘을 즐김 |
| 타인의 고통에 반응함 |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짐 |
| 영웅으로 변해감 | 빌런으로 변해감 |
결국 차이를 만든 것은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선택이었습니다.
액션보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다움’이다
이 작품은 상당히 과격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하늘을 날고,
건물을 뚫고,
미사일과 총격을 주고받습니다.
특히 마지막 이치로와 히로의 대결은 실사 영화의 특수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면입니다.
후지 TV는 이 작품을 SF 액션 스릴러로 소개했고, 영화 리뷰에서도 후반부의 시각효과와 두 인물의 충돌이 중요한 볼거리로 평가됐습니다.
하지만 액션만 보고 끝내면 이 영화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버리고 기계가 되어도 인간다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치로는 기계가 되었지만 오히려 사람을 더 많이 살리려고 합니다.
히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점점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역설적인 장면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가진 사람이 인간성을 잃고, 기계의 몸을 가진 사람이 인간성을 되찾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제목부터 이치로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기계입니다.
그렇다면 기계가 된 순간 그는 인간이 아닌 것일까요?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질문합니다.
사람을 치료하고,
다른 사람을 구하고,
가족을 걱정하고,
누군가의 고통에 마음 아파한다면,
그 존재를 단순히 기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인간다운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누야시키〉의 진짜 주제는 로봇이 아닙니다.
인간성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다만 영화가 모든 부분을 충분히 깊게 다루지는 못합니다.
원작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이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데 비해, 127분의 실사영화는 많은 사건을 압축해야 합니다.
때문에 히로의 심리나 주변 인물들의 변화가 다소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리뷰에서는 영화의 중반부가 히로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이치로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반면 실사화 자체에 대해서는 원작의 시각적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특히 이치로의 기계 신체와 후반부 액션을 실사 특수효과로 구현한 점은 이 작품의 주요 볼거리입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사용할까?”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벌 수도 있고,
복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면 과연 나는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상황에서는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처벌할 수 없는 힘이 생긴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이누야시키〉 총평
〈이누야시키〉는 겉으로 보면 상당히 독특한 일본 SF 액션영화입니다.
말기암을 선고받은 58세 직장인이 갑자기 기계 인간이 되고,
고등학생 역시 같은 능력을 얻으며,
두 사람이 도시를 무대로 충돌합니다.
설정만 보면 상당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힘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이치로는 힘을 얻고서야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히로는 힘을 얻은 뒤 자신이 더 이상 인간 사회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두 사람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힘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거대한 미사일이나 공중전이 아닙니다.
죽음을 앞두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기계가 된 이치로가 오히려 인간다움을 되찾는다는 역설.
그것이 〈이누야시키〉가 액션영화 이상의 이야기가 되는 지점입니다.
한 줄 평
“같은 초능력을 얻은 두 사람의 정반대 선택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몸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임을 보여주는 일본 SF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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